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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ok Review/01. 고전 및 인문

백범일지(白凡逸志)는 그냥 일지도, 일기도 아닌 역사이다

by 스티브 다 빈치 2022. 8. 24.

알바하러 출근하는 대학생인 딸에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야? "라고 물어보았다. 

MZ세대라서 혹시 대답이 이상하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느낄새 없이 바로 "안중근, 김구, 그리고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이순신"이란다. 역시 이순신 장군은 기존의 기성세대부터 어린아이들까지 국가를 지켜내고자 했던 그 마음을 알아봐주는 거 같아 기쁘다. 이순신 장군을 알기 위해 난중일기, 이순신의 바다, 징비록, 쇄미록, 행록을 읽으면서 그 분의 고귀한 일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몸을 떨었다. 

2년전 고등학생 아들에게 학교로부터 주어진 독서리스트 (약 50여권)에서 한 권을 골라 독서감상문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 때 결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던 아들에게 추천해 준 책, 바로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구국정신을 표현했던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산에 다짐하니 초목이 알더라" 라는 시구를 가장 좋아했던 김구 선생님.

강화도 조약의 해 (1876년) 양력으로는 8월 29일에 태어나 구한말 시대, 일제강점기, 광복, 그러나 남북의 분단에 시대를 살아가신 앞세대의 인물을 이해하고자 서가 속 백범일지를 주저없이 들었다. (기뻐야 하는 양력생일 8월 29일은 하필 이후 경술구치의 해 1910년 8월 29일과 같은 날이라 결코 기쁘지 않았을 듯 ).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스타일이나, 그래도 데드라인을 할애 하였고, 그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스토리 포스팅을 하면서 타이틀 자체에서 "백범일기"라고 잘못 적을 뻔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백범일기인지 백범일지 인지 헷갈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지(逸志)는 그날의 일을 적은 일기(日記)나 업무에 관련한 기록을 적은 일지(日誌)가 아니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의미의 일지이다. 

간단하게 선생님의 연보를 적어보자면, 

어렸을 적 이름은 김창암 - 18세에 동학에 입문 (김창수로 개명) - 20세에 3살 아래 안중근 만남 - 21세 일본인 스치다 죽임(명성황후 시해범) - 23세 탈옥 후 스님이 됨 (원종) - 25세 김구(金龜)로 개명 - 31세 최준례와 결혼 - 35세 신민회 참여 - 36세 15년형 선고 - 39세 김구(金九)로 개명, 백범(白凡)으로 호를 고침 - 40세 가석방 - 44세 상해 망명 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51세 나석주 의거 도움 - 53세 백범일지 상권 집필 - 55세 한국독립당 창당 - 56세 한인애국단 창단 - 57세(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사 도움 - 60세 임시정부 주석 - 65세 한국독립당 결성 - 66세 백범일지 하권 집필 - 67세 임시정부 3.1절 선언으로 중,미,영,소에 임시정부 승인 요구 (다음해에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문제 논의) - 70세 일본 항복 후 국내 복귀, 신탁통치 반대 - 71세 좌우합작 지지성명 발표 - 72세 백범일지 출간 - 73세 북한에서 남북연석회의 참석 및 남, 북한의 단일정부 수립 결사 반대 - 74세 안두희에 의한 경교장에서 운명

한 사람의 일생을 몇줄로 적어보았으나, 그 속에는 수십, 수백페이지의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시간속에서 지난 일을 두 아들에게 알리고자 쓴 내용이 백범일지의 "상권"이며, 이후 독립을 여망하는 해외동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민족운동의 열의를 알리고자 한 내용이 "하권"이다. 마무리에는 그 유명한 "나의 소원"을 기술하여 민족국가, 정치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라는 세개의 주제를 가슴으로 풀어주셨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밤새워가며 선생님을 고문하는 일본일들에게 오히려 "밤새 일하는 것을 힘들어했던 지난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자괴감에 빠지셨다. 고문을 받으면 받을 수록 강해지시는 선생님....

아쉬운 점...백범일지 하권 이후 남과 북의 갈등속에서 남과 북으로의 분단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속에서 "신탁통치" 를 반대하신 내용이 없다. 비록 일제로 부터 해방은 되었으나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군정체계하 최고 5년이라는 약속된 시기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동아일보의 "역사적 헛발질이며 석고대죄할 오보"가 낳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이미 좌파가 많았기에 소련은 신탁통지를 반대하고,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하였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독립을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나     적어도 동아일보에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반대내용의 기사로 인해 국내는 좌와 우의 엄청난 반대로 들끓게 되었다.

1909년 10월 27일 아침 하얼빈 전보로 "이토 히로부미가 한인 은치안에게 피살되었다"는 신문 보도를 통해 은치안이 바로 안응칠 곧 안중근이라는 사실을 선생님은 알게 되었다. 전날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날짜가 10월 26일인데, 70년뒤에 일어난 일과 동일한 날짜라 하니 의미심장하다. "하얼빈"이라는 신간이 얼마전에 소개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인 김훈 선생님이라 큰 기대를 가지고 바로 구매하였다. 자, 다음은 "하얼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안중근 의사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준비는 이미 끝났다.